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다부동 전투 (문단 편집) === 해평지구 전투 === 8월 3일, 명령에 따라 해평지구로 철수한 제11연대는 사단 중앙에 배치되어 적의 공격을 최대한으로 저지하는 임무를 맡게 되었다. 우선 제11연대는 이전 전투의 손실로 말미암아 학도병 300여명과 고참병 일부로 제3대대를 재편성하고 나머지 병력으로 제1, 2대대를 보강하였다. 따라서 제1, 2대대는 낙동강 연안에 배치하고 제3대대는 보충된 신병 때문에 후방에서 2~3일 간 훈련을 한 뒤 배치하기로 하였었다. 이때 제12연대가 배치된 낙정리 부근에서는 제12연대가 사단예비대로서 상림동으로 철수하고 그 자리에는 제6사단 2연대가 담당하게 되었는데, 제2연대는 갑자기 넓어진 전투지경선을 감당하지 못하여 결국 제2연대와 제11연대 사이에 간격 3 km가 생겼다. 적은 이 간격에서 "너희들 가족은 모두 죽었다 그러니 너 혼자 남아서 무엇 하겠느냐! 투항하라."라는 방송을 틀어 선전하였다. 4일, 적은 선산 일대에 병력을 증강하여 점차 남하할 기세를 보였으며, 09시에는 낙동리 전방 3 km 지점에 트럭 2대와 직사포 2문으로 아군 진지에 포격을 가하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상황 속에 아군은 적정을 탐지한 후 송당리와 강창 도하장의 경계를 공고히 함으로써 적의 침공에 대비하였다. 적정을 탐지코자 수색대를 보낸지 2시간이 되는 시각, 11연대와 2연대의 간격 중 비등봉 동쪽에 적 1개대대가 오고 있으며 적 1개중대는 구시골 방면으로 진출하고 있다는 보고를 받았다. >8월 4일 >"함창 상주방면과 옥산방면으로 남하하는 적은 점차 낙동리(28~98) 선산(28~83.9)에 그 수를 증가하고 있었으며 09:00 경 낙동리전방 3킬로미터 지점에 주력 5대와 직사포 2문으로 아 진지에 대하여 사격을 가하고 있었으며 연대는 적정을 탐지코자 광범한 수색망을 펴는 한편 주로 송당리(31.9~88.9) 도하장과 강창(32.2~82.7)도하장에 대한 경계를 엄중히 하고 있었음." >---- >'''《제1사단 11연대 해평지구전투상보》中''' 그리하여 적은 5일 01시를 기하여 단평동 인근 도로를 따라 남하하여 제2대대 정면에 출현하였다. 또한 02시에는 제5중대 정면에서 참병소대로 보이는 적이 포착되었는데 중대장은 이들에 대한 사격을 가하라고 지시하면서 육박전을 감행하여 적을 격퇴하였으나, 사망자 10여 명에 부상자 20여 명이 발생하였다. 그러나 동이 트고 적의 시체를 살펴봤더니 총 20구 적의 손실이 더 컸음을 확인하였다. 이후 152고지로 이동하여 새로운 진지를 구축하였는데, 이때 74고지를 방어중이던 제7중대는 갑작스런 적의 침투로 힘없이 무너져 내려 이들 병력도 152고지로 철수하였다. 이 공격으로 제7중대가 무너지면서 비등산-하도봉-74고지가 단숨에 점령되는 비극을 격어 아군은 이를 반드시 탈환해야만 했다. 그리하여 13시에 제5, 6중대는 적이 재편성을 실시하기 전에 공격을 실시하여 16시에 74고지와 하도봉을 탈환하였다. 이날 10시 사단장 백선엽 준장은 아군 제11연대가 위기에 빠졌음을 알고 예비대로 주둔 중이던 제12연대 1대대를 증원하였다. >8월 5일 >야간을 이용하여 낙동리로 도하한 적 선견 1개연대는 낙동(28.2~87.2) 정미동(28.9~93.9)를 경유하여 단평동(33.7~81.2)에 이르는 도로로 남하하고 있으며 그의 일부병력은 01.00경 아 제2대대 정면에 출현하고 있었음 10.00 적은 임이 △74.4(32.6~85.1)을 점령하여 완강히 저항함으로 연대는 13.00 제5, 6중대로 하여금 낙산동(33.5~85.9)으로 공격을 감행하여 수시간 치열한 교전 후 적은 많은 시체를 남긴 채 퇴각하여 16.00 이 고지를 점령확보하였으며 제6중대는 원진지로 철수하였음 18.00 제12연대로부터 1개대대 임시배속하여 왔음으로 △161(37~82)일대에 배치하였었음 >---- >'''《제1사단 11연대 해평지구전투상보》中''' [* 당시 피난령이 내려진 낙동강에서는 피난민들이 적의 포격소리가 들리자 너도나도 할것 없이 강을 건넜는데 이모습을 본 장병들은 "피난민의 도하를 방지하라"는 명령을 어기고 도와주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